조선시대 행궁인 용양봉저정(龍驤鳳䎝亭)은 조선 22대 임금인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에 참배하러 갈때 잠시 머물며 쉬었던 곳이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 6호로 지정되어 있는 용양봉저정의 의미는 "한강 이북의 산봉우리들이 마치 용이 머리를 들며 솟아오르고 봉황이 날아오르는 것과 같다"는 의미로 이름이 붙여졌다.
원래 용양봉저정은 정문과 누정 등 두세 채의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한채만 남아 있다. 고종 때까지 왕실에서 사용했다가 1907년(융희 원년)에 순종이 유길준에게 하사했다. 유길준은 황제의 은덕에 감격해서 이곳에 머물지 않고 이름을 '조호정(詔湖亭)'으로 바꾸었다. 1930년 일제강정기 시기에 이케다가 소유하면서 '용봉정'으로 바꾸었다. 일부 전각을 부수고 용양봉저정 터를 포함한 대지 5300여 평에 운동장, 식당, 목욕탇 등 오락시설들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광복 이후에 다시 대한민국 정부가 소유하면서 이케다가 만든 시설들을 철거하였고, 1972년 5월 25일에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 6호로 지정하였다.
정조가 화산에 행차하던 당시의 모습으로 '화성능행도병'에 그려져 남겨 있다.
1795년 정조의 화성행행 <반차도>는 원래 두루마리 형태였으나 서울대학교 한영우 교수의 고증에 의해 새로 채색 제작한 것이다.
1700여명의 인물과 800필의 말을 담은 이 그림은 단원 김홍도의 지휘하에 김득신, 이인문, 장한종, 이명규 등 그 시대의 쟁쟁한 화원들의 공동작품이다. 왕조의 위엄과 질서와 자신감이 넘쳐흐르면서 낙천적이고 익살스러운 한국인의 얼굴 모습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노량주교도섭도를 보면 한강을 건너기 위해서 담당 주교사가 담당을 해서 배다리를 만들었다. 배다리는 관의 개인 소유의 배를 모아서 만들었는데 큰것 80척, 작은 것 400~500척을 징발하여 한강을 건너지르게 하였다. 그 배 위에 긴 널판 1000여장을 깔았다. 양쪽 가에는 난간을 설치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용양봉저정 바로 밑에 광광 명소화를 하기 위해서 부지를 매입해서 역사공원 조성하고 가족공원으로 만들어갈 계획으로 보인다. 앞으로 어떻게 변화가 될지 기대가 된다.
주교사 터가 용양봉저정 바로 밑 길가에 비석으로 남아 있다. 주교사는 임금이 행차할 때 한강에 부교를 놓는 일과 전라도와 충청도 지방의 조운을 맡아 보던 조선시대의 관아이다.
서울시 흑석역 4번출구에서 용양봉저정공원을 따라 내려 오면 용야봉저정이 있다.
용양봉저정을 들렸다 용양봉저정 공원을 돌아서 산책하고 경치가 좋은 한강 청년 카페들려서 커피 한잔하는것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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